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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한겨레와 함께한 2019년 몽골, 시베리아 횡단열차, 바이칼 기행의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작성자 : 산하 등록일 : 2019-08-18 조회수 : 1106

한겨레와 함께한 2019년 몽골, 시베리아 횡단열차, 바이칼 기행의 감흥을 풀어내며

  

   몇 년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한겨레 바이칼 여행, 이번에는 몽골 초원이 덧붙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간다는 말에 더이상 미룰 수 없다며 선배와 1번 순서로 신청을 했다. 더위에 약한 체질로 태어나 여름이면 비실비실 맥을 못 추는 나에게 한겨레통일문화재단에서 주최하고 BK투어에서 진행하는 몽골, 시베리아, 바이칼은 귀가 솔깃해지는 상품이었다.

  국방, 환경, 국제정치, 사회경제, 역사, 축산업, 생태, 환경, 커뮤니케이션, 심리, 산업, 금융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 박사님들이 대부분이었던 우리 몽골 팀 앞에서 후기를 쓴다는 건 어휴! 깊고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는 가이드북에 있거나 대표님, 소장님, 이사님이 죄다 이야기하셨으니 나는 나의 관심 분야, 여행의 감흥만 언급하기로…….

  ‘아시아를 푸르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몽골의 사막화와 우리나라의 황사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타국 땅에서 노심초사 외로움과 고단함과 인내심과 싸우며 사막화된 몽골 땅에 풀씨를 뿌리고 비타민 나무를 심어 몽골 주민들과의 상생까지 생각하는 푸른 아시아 연구소오기철 소장님의 큰 뜻과 열정이 가슴 먹먹하게 다가왔다. 오래 전에 감명 깊게 읽은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책이 문득 생각났다. 중국 인위쩐이라는 여자가 네이멍구 사막에 외로이 살고 있던 한 남자에게로 시집보내져(강제로) 수십 년 동안 나무를 심으며 사막에 숲을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현장을 답사하고 주민들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접대를 받고 조림지와 초지를 빠져 나왔을 때 우리 모두는 다같이 , 허브향!”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탄성을 질렀다. '푸른 아시아 연구소'의 고귀한 뜻이 그윽한 풀꽃 향기로 전해져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부디 오래도록 지속되어 인위쩐의 숲처럼 울창한 숲을 이루고 깨끗한 지구를 만들어 주길 기도했다.

   드넓은 초원에서 말을 달리고 허브향 가득한 곳에 누워 별빛을 감상하리라는 야무진 꿈을 안고 몽골을 찾았다던 몽골 팀들, 그렇건만 그 땅에 귀하디귀한 빗님이 우리를 따라 올 줄이야? 꿩 대신 닭이라고 말 대신 낙타를 탔고, 바이칼에서 손전등을 비추면서 말똥, 소똥 피해가며 40분을 힘들게 밤길을 올라간 우리의 정성이 갸륵하다며 7(북두칠성)나 별을 보여주는 횡재(?)를 거머쥐었다. 추측컨대 분명 우리 몽골 팀에 용띠들이 대거 출두했을 거라며 죄 없는 용띠들 탓을 해보기도. 별을 보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마니아들도 주변에 많더라만 나야 뭐, 강물처럼 흐르는 은하수와 쏟아지는 별을 신물 나도록 보고 자랐다. 심지어 별똥별이 떨어지면 그 맛이 캐러멜 맛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하며 별똥별을 주우러 옆 마을까지 달음박질쳐 달려가기도 했었다. 별을 보기 위해 몽골을 다시 찾으시겠다면 그믐달과 초승달이 뜨는 음력 26~3일 정도가 가장 좋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겠다. 우리들은 음력 8일에서 15일 사이에 방문했으니 사실 별 보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당일 아침 몽골 전통복장으로 환복하고 부츠를 신고 나타났던 우리의 용사 침게 가이드가 흙탕길에 뛰어들어 제 땅에서 잘 놀고 있는 소떼들을 몰아내고, 남자분들 찰진 흙탕길에서 맥을 못 추는 버스를 두 번이나 밀고 어렵게 도착한 테를지 국립공원 게르 캠프, 깜깜한 어둠 속 손전등을 비추고 밤이슬에 발을 흠뻑 적셔가며 화장실과 세수간을 찾고, 노릿노릿한 양털 냄새 코끝을 간지럽히는 곳에서 장작불 활활 타는 가운데 숙면을 취했다. 한국은 연일 폭염주의보라는데 장작불이라니! 초록초록 초원 위의 하얀 게르와 기암절벽 너머로 피어오르는 안개, 햇살 아래 이슬 머금고 함초롬 피어있는 달구지풀, 솔체꽃, 솔나물, 잔대, 시호, 사상자, 꼬리풀, 장구채, 절굿대, 야생대파, 노래에서만 알고 있었던 에델바이스, 또 에델바이스, 천지삐까리 에델바이스, 기화요초들이 만발하다. 김영하 작가 말을 빌리면 진부한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눈부신 존재들이다. 귀하다고 예쁘다고 데려갈 수 없으니 보물처럼 카메라에 담아본다.

   울란바타르에서 몽골을 종단해 올라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23시간을 달려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가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TV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협소한 침대칸에 4명이 배정 받았고 난 2층 침대를 써야 했다. 자정이 지난 시간 잠결에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러시아 입국 수속을 받는 과정은 불편하고 까다로웠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요람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열차의 규칙적인 롤링에, 덜컹거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고, 시베리아 시원한 바람결을 이불 삼아 깊은 잠을 잤다. 아침에 어느 역에선가 정차하자 침게의 작전개시 명령이 떨어졌다. 역사에 있는 화장실과 세수간을 20분 만에 다녀오라는. 다들 자고 일어난 옷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바쁜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고 육교를 걷고 걸어 볼일들을 보고 뛰다시피 돌아왔다. 혹시나 시베리아에 남겨져 뜻하지 않은 유배생활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낯선 여행객들이 같은 침대칸을 배정 받으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혼자 여행 와도 30분 만에 완벽 적응한다는 우리의 OO 언니가 이 방 저 방 마실을 다니기 시작하며 수다를 떨고 기꺼이 자기 방으로 여행객들을 초대하고, 좁은 복도에서 편안한 차림에 민낯으로 바깥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 새 한 식구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고려인 할머니가 만드셨다는 도시락의 반찬들 중에서 친정어머니 손맛이 났던 오이장아찌를 먹으며 이 분의 고향은 어디였을까를 떠올려보고, 중국으로 간 동포들을 조선족(떼거리)’, 소련 땅으로 간 동포들은 고려인이라 부르는데 왜 그럴까 궁금했다. 궁금하면 공부하고 공부해서 남 주자. 한 교수 출신의 수필가(김학)는 이렇게 짐작했다. 중국은 소수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족 자치주를 만들어준 반면, 소련은 소수민족을 동화시키려고 고려인(개인)이란 호칭을 붙여준 게 그대로 뿌리를 내리게 된 성 싶다고. 그 결과 조선족들은 지금도 우리말 성과 이름을 쓰고 우리말을 열심히 갈고 닦고 있으나, 고려인들은 '빅토르 최'처럼 러시아식 이름에 우리 성만 쓰고 있으며, 우리말과 글, 풍습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 마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다.

   음악을 들으며, 시집을 읽다가 열차의 차창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이칼 언저리를, 자작나무숲 사이로 힘차게 흐르는 맑디맑은 강을, 광활한 시베리아 대평원에서 유유자적 풀을 뜯는 소떼들을, 초지 끝 지평선 하늘 위를 노랗게 물들이는 노을을 감상했다. 세상에, 시베리아 하면 동토, 유배지, 구한말과 일제 시대 우리 동포들이 내몰린 땅, 얼음공주 정도로밖에 떠올릴 게 없던 내게 창 너머 풍경은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못 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좁은 침대칸을 제법 효율적으로 정리할 줄 알게 되고, 2층 침대를 맘대로 오르내리게 되었을 때쯤엔 다들 하루쯤 더 갈 수도 있겠다며 횡단열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걸 아쉬워했다. (, 우리나라 사람 중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제일 처음 탄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1896년 고종의 명을 받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한 고종황제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이랍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자결하신 분 기억나시죠? 대관식 참석 후 돌아오는 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했는데 여러 교통수단을 동원해 돌아오다 보니 두 달이나 걸렸다네요.)

   이르쿠츠크에서 6시간을 달리고 도착한 사휴르따 선착장, 바로 눈앞에 알혼섬이 있건만 러시아 사람들의 비합리적 시스템으로 순번을 여러 번 빼앗기는 통에 세 척의 배를 떠나보내고 어렵게 들어간 알혼섬, 회록색 4륜구동차 우아직에 6명씩 배정받아 또 40분을 더 달려 들어가야 하는 후지르 마을, 우리들의 숙소 바이칼 뷰 호텔이 있는 곳이다. 섬 안에서도 초지가 끝없이 펼쳐지고 쭉 뻗은 신작로 같은 길을 우리 팀 빵차들이 경쟁하듯 우리 차를 앞질러 간다.(나중에 대표님한테 혼났단다. 우리가 A조 차였고 총대장 대표님이 타셨는데, 암, 앞지르면 안 되지.) 섬 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길이 유려한 곡선으로 아름답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호수엔 여객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다음 날 아침 우리의 빵차 우아직을 타고 바이칼 호수 명승지(사자섬과 악어 바위, 수용소 자리와 모래사장, 타이가 숲과 우주릐만, 사랑의 언덕, 하보이곶, 삼형제 바위, 세르게 사열대와 아시아 대륙에 존재하는 아홉 곳의 성소 중 한 곳이라는 불한바위)를 둘러보는 일은 그야말로 다이나믹 그 자체였다. 드넓은 초원을 평탄하게 달리다가 어느 새 금강송 울창한 침엽수림으로 뛰어들고, 사막화된 모래밭에 푹푹 빠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모래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가 하면, 또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이번엔 양쪽으로 바퀴자국 깊게 구덩이로 파인 사잇길을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아슬아슬 비틀비틀 뒤뚱뒤뚱 덜컹덜컹, “으악! 으악!”즐거운 비명소리, 도시생활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시골길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듯한 원초적인 즐거움이 이런 것일까? 우리들의 신청곡을 받은 디스크자키 00 님 덕분에 음악이 흐르고 입담 좋은 OO 님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우아직, 다른 빵차에선 누리지 못한 특혜, 대표님의 추가 해설까지, 무뚝뚝할 것 같은 얼굴을 한 알혼섬 젊은 기사가 내릴 때마다 선뜻 손을 잡아주며 에스코트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우아직에서 내려 타이가 숲속에서 1시간 트레킹을 하는 코스다. 보랏빛 자주꽃방망이와 하이얀 에델바이스가 잘 배색된 예쁜 야생화 길에서 걸으랴, 찍으랴,  발길이, 눈길이, 손길이 분주하던 끝에 드디어 바이칼 유일의 몽돌 호변 우주릐만에 도착, 위 사진처럼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우리의 빵차들은 먼저 와서 호변에 모두 대기 중이다. 기암절벽들 때문에 바이칼 호수를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다른 곳과 달리 발을 담글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양말을 벗어제끼고(벗어젖히고) 대바이칼에 발을 담갔다. 바이칼과 더 깊이 교감하고 싶었다. 삶의 묵은 찌꺼기들이 모두 씻겨 나가는 상쾌한 기분이다. 집에 와 생각하니 좀 찝찝하다. 청정호수 바이칼을 내가 더럽히고 온 건 아닌가 싶어.

  몽돌 호변에서 먹는 사냥꾼식 점심 식사, 현지인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들이 좁고 긴 탁자 위에 바이칼 호수에서 잡히는 생선으로 끓인 오믈 수프와 오이 토마토 썰어놓은 것, 흑빵과 식빵 조각, 샐러드, 홍차가 전부인 간소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감자와 당근과 함께 끓인 오믈 한 토막을 살며시 맛보았다. 우리네 은어 맛이었다. 비리지 않고 거북하지 않고 담백한 맛. 각자 수프 그릇을 챙겨 들고 몽돌 호변에 앉아 세계적인 바이칼 호수 수평선을 바라보며 먹는 점심 맛이라니! 어느 5성급 럭셔리한 진수성찬이 이보다 맛있을까?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 뭘 하고 난 뒤 먹고, 내 옆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디에서 먹고, 어떤 분위기에서 먹고, 어떤 기분으로 먹는가에 따라 아무리 소박한 음식일지라도 진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제주, 부산, 순천, 대구, 천안, 남양주, 성남, 서울, 대한민국 각지에서 모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물과 초원을 분명 사랑할 것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이곳 먼 바이칼까지 소풍 와서 먹는 소박한 점심, 이 점심 맛이 별로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행을 잘못 온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점심 프로그램이 참으로 맘에 들었다.

   숲속에 마련된 재래식 화장실, 좀 심하다는 정보에 과감히 나무 뒤쪽 자연 화장실을 선택했다. 펄렁하고 긴 옷을 가리개 삼아 알싸한 풀잎향기 맡으며 이곳 바이칼 숲을 좀 더 기름지게 해 주는 것도 나무들에게 베푸는 보시인 셈이다. 이곳에 여행 와서 재래식 화장실을 수시로 만났지만 60~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까짓것 뭐,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유년시절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그뿐.

 

  압도적 규모, 청정함의 진수, 천혜의 자연경관, 세계 자연 유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바이칼 호수를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다. 호수 안에 있는 22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인 알혼섬, 우아직으로 하루 종일 돌아봐도 알혼섬의 서쪽에서 북쪽 정도만 봤으니 그 규모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드론을 아무리 높이 띄워도 바이칼 전체는 물론이고 알혼섬도 다 담길까 싶지 않다. 이 섬과 이 바이칼의 전설을 기억하고 탄생설화까지 서려 있는 기암절벽들, 물 밑 가시거리가 40.5m나 되는 맑고 투명한 말로예 모레(작은 바다)와 발쇼에 모레(큰 바다), 바이칼 동식물의 80% 이상이 이곳만의 고유종이라는 희귀 동식물의 보고, 여름이면 형형색색의 야생화들이 호숫가를 뒤덮는 장관이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이 바이칼을 시인이 아니라면, 화가가 아니라면, 어떻게도 표현할 도리가 없다. 명승지 곳곳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기 위해 파노라마로 찍어봐도 내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비해 턱없다.(경상도 말로 '택도 없다'해야 실감이 나는데 표준말로 하려니 여~~엉 맛이 안 난다.) 훌륭한 문명의 이기들이 생겨나도 눈만한 렌즈는 없다는 뜻이다. 뉴질랜드 호수 보고도 놀란 가슴, 바이칼 호수 앞에선 경기를 일으켜야 할 것 같다. 바이칼이 전세계 얼지 않는 담수의 20%를 차지하고 있다니, 물 부족 국가가 늘어가는 판에 머잖아 러시아의 봉이 김선달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어떻게든 바이칼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보고 싶지만 표현력 역부족으로 패스 패스…….

   

  데카브리스트 혁명의 주동자 중 한 명이자 톨스토이의 소설전쟁과 평화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하는 발콘스키의 집이었던 시베리아 유배문학의 요람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대표님의 스토리텔링이 인상 깊었다. 재미있었다. 그러나 과했다. 우리들의 청취 태도에 박물관에 걸린 초상화 속 인물, 데카브리스트 아내이자 약혼자인 11명의 여성들을 모두 설명할 기세다.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비는 오지요, 눈으로 봐야지요, 수신기로 설명은  들어야지요, 손으론 사진도 찍어야지요, 박물관은 좁지요, 사람은 많지요, 숨 쉬기는 곤란하지요, 나는 평소 멀티 기능이 잘 안 되지요, , 어쩌란 말이냐 답답한 이 상황을? 그래도 대표님은 아주 눈치 없는 분은 아니셨다.

   데카브리스트들의 혁명과 유배생활이, 상공업으로 살아가던 척박한 이르쿠츠크에 교육, 문화, 예술면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시베리아 유배 문학에 다양한 소재를 제공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으나, 선지식이 그다지 없던 나는 집에 돌아와서 주최측이 제공한 가이드북을 통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엉클어져 있던 이야기타래를 정리해야 했다. 그들은 농노제에, 절대군주제에 반기를 든 왕족 출신이거나 귀족 출신 장교라더니, 박물관 전시물들로 보아 유배생활도 역시 마지막 10년 정도는 귀족생활을 누리며 호화롭게 살았던 것으로 보였다. 물론 볼콘스키는 농민공작이라 불릴 만큼 농민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1861년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제 명령을 접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유배생활한 게 맞나 싶을 정도의 호화로운 전시물들이 자기의 뜻이었든 아내 마리아의 뜻이었든 절대 살아온 출신은 못 속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롤레타리아 출신인 내 자격지심?

   몇 년 전 폴란드 오쉬비엥칭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참담한 전시물들 앞에서 우리 일행은 정말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카메라 샷을 누르지도 못했었다. 전시관을 빠져나왔을 때 앞마당에 피어있던 풀꽃들과 광기어린 역사를 지켜본 자작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처연해 보일 수가 없었다. 오죽 했으면 철학자 아도르노는 잔혹한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가 과연 서정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말을 했을까? 그런데 발콘스키 집 마당에 피어 있던 화사한 꽃들이 결코 처연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 시대에도 그런 호사스런 옷을 입고 시낭송회를 열고 세계에서 2대밖에 없다는 피라미드형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하며 음악회를 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물론 학살과 유배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우리 몽골팀에는 신념을 최고의 가치로 내거는 운동권 출신들이 많은 것 같았다데카브리스트 혁명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는, 우리가 아는 시인 푸시킨도 시베리아로 끌려간 동지들을 위해 1827년 썼다고 하는 헌시에서 신념을 노래하고 있었다.

 

   신념 앞에 감옥의 문 열리리라

   자유가 문에서 그대 맞을 때

   형제들은 그대에게 칼을 주리라

 

   마지막 프로그램, 이르쿠츠크 민속춤 공연은 다른 나라와 달리 여행객들을 참여시켜 함께 노는 것이 좋았다. 언어는 달랐으나 마치 우리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강강술래등을 연상시켜 낯설지 않았다. 알혼섬이 우리 민족의 시원지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슬라브족도 보였지만 우리민족의 시원이라고 추정하는 부랴트족 할머니들도 많았다. 그 지역에서 열리는 민속춤 경연대회를 보며 대표님이 관광객들에게 선보여주자고 제안하셔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몽골 팀이 그들의 이끎에 흔쾌히 손을 내밀고 동참해 놀아준 것은 그들이 우리와 뿌리를 같이 한다는 대표님의 사전 설명에 동질감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르쿠츠크에서 여행사 대표님이 처음 합류해 시베리아 사랑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을 때 우리들의 리액션이 약해 대표님을 예민하게 만든 것 같다. 연세 지긋한 분들이 초등학생처럼 , 대표님”, “, 그렇군요.” 이런 반응을 보이기는 힘들다. 그러나 우린 흥미롭게, 진지하게, 열심히 들었고 키워드를 메모했다. 셔먼의 모자, 천마총 금관모양, 제독의 연인, 꼴착, 적백대전, 최재형, 김알렉산드라, 마담포라, 백만 송이 장미, 마리가리따(?), 안드레이, 백학, 조국전쟁, 대조국전쟁 등. 우리나라 무속인들이 기를 받기 위해 샤먼의 땅, 이르쿠츠크를 많이 찾고 기가 느껴지면 무조건 차를 정차시키고 산이건, 풀밭이건 기를 받으러 들어간다는 말에 세상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빵차 A조에서 함께 겪어 보니 대표님은 젊은 세대의 표현대로라면 츤데레 같은 사람이었다. 시베리아 땅에 오래 살다 보니 얼굴은 굳어 있고(책임자로서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요즘의 의사소통법은 다소 미흡했으나, 그가 얼마나 시베리아를 사랑하는지,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인지, 여행객들을 위해 뭘 하나 더 풀어놓을까 고민하는 사람인지 역력히 보였다.

   문득 우리들의 가이드 침게, 레라, 제냐 보고 싶다. 한때는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 2대 강국 중 하나였던 소련의 후신 러시아 땅에서 태어난 그들이 지금 반도 땅 작은 나라의 대표 밑에서 일하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현재 자기 나라의 위상이야 어떻든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채 열심히 일하는 그녀들이 참 예쁘고 대견했다. 세 사람 모두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했지만 이응 발음만 유독 안 돼  '신성한'을 '신선한'이라고 발음할 때마다 혀 짧은  그 소리가 이제 갓 말 배우는 아기 같아 참 귀여웠다.  '신성한 성지'가  '신선한 선지' 로 둔갑할 때마다  '신선한 선지'로 샐러드를 해먹어야 하나 선짓국을 끓여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서 잠시 갈등했다 하면 얼굴 붉히겠죠?  아니랍니다. 우스개구요. 우린 다 잘 알아들었어요.  우리말 넘 잘해 줘 오히려 많이 고마웠어요.

   혹,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글만 보고 무슨 원시생활 체험하고 왔냐고 오해할 것 같아 한 마디 덧붙인다. 우린 5성급 호텔뿐 아니라 침대에 누워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있는 유명 건축디자이너가 설계한 호텔에서도 잤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 다만 그런 부분들은 내 감흥을 끌어내지는 못해 언급을 안 했을 뿐! 난 산골 출신이고 내 감성을 건드린 건 야생적인 체험들이었다.

   이번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다채롭고 야생적인 체험에다 우리 민족의 시원지를 찾고 우리의 역사와 몽골, 러시아의 연결 고리를 찾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일상의 탈출을 꿈꾸며 떠나왔지만 네가 발붙이고 사는 네 조국의 현실을 한시도 잊지 말라는 듯 한반도의 안보와 동북아 평화협력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강연까지…….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데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다크 투어리즘'이 대세란다. 단순한 휴가 대신 아픈 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역사테마 여행지를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추천하고 관광객들의 발길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우리 여행 일정에도 이태준 열사 기념관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사학과 교수님이 동행한 터라 이런 부분까지 감히 내가 입을 떼기는 조심스러워 언급을 피했다. 대표님 여행사에도 '항일독립운동유적지 탐방' 상품이 눈에 띄어 세상 흐름을 잘 읽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이처럼 만족스런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해 주신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창곤 이사님과 한겨레평화연구소 권혁철 소장님, 자신의 소지품보다는 여행객들을 위한 응급약품 및 비상용품이 한 가득이었던 캐리어를 가져와 조용히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은 임소연 차장님, 김지은 간사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여행은 정신을 젊게 하는 샘이다(안데르센). 이번 여행은 전율할 정도의 시원한 감로수 한 사발을 쭈욱 들이키고 한층 더 젊어져 돌아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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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 TOUR
안녕하세요^^ bk투어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정성스러운 후기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의 정성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소정의 티켓 보내드립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관심과 이용 부탁드리며, 다음여행지에서도 뵙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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