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비케이투어서비스

  • 커뮤니티
  • Community
고객센터
1661-3585
02-703-1373
FAX 02-6280-1387
bktour@daum.net
평일 AM 09:00 ~ PM 06:00
토,일요일,공휴일은 휴무입니다.
입금계좌안내
농협 : 317-0009-9310-11
예금주 : (주)비케이투어서비스
예약금은 예약일 기준 2일 이내에 결제해 주셔야 실예약으로 확정이 됩니다. 예약 후 결제가 안되면 예약취소가 됩니다.
여행후기
몽골- 바이칼 여행후기 (2019. 6.7.- 6.15.) - 4 (끝)
작성자 : 박종봉 등록일 : 2019-06-22 조회수 : 2892

여섯째 날 (6.12.)

너무나 아쉽지만 우리는 오늘 알혼섬을 떠나야 한다. 왜냐면 환바이칼 관광열차가 매주 2회밖에 없고 목요일인 내일 차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이다.

시간이 많다면 알혼섬에서 배낭매고 트래킹을 하든 차를 빌려 차박을 하든 더 즐기고 싶으나 어쩌랴 우리에게는 한정된 시간이 허용될 뿐인데.

아침에 알혼섬 마지막 관광포인트인 부르한바위를 구경하였다. 이곳은 숙소에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한다. 코린 부랴트족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는곳으로 한민족 시원지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이란다. 돼지머리에 고사라도 지내야할 곳인가 싶을 정도로 세르게라고 하는 우리의 장승같은 것과 여러 동물의 형상을 새긴 솟대가 이삽십여개 세워져 있었다. 그만큼 신성한 곳이란 얘기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저앞 호안 바위까지 내려가서 호수 속에 솟은 바위(독도를 닮은 부르한 바위)를 봤어야 하는데 우리끼리 와서 사진찍고 바빠서 생략하고 말았으니 나중에 알고 얼마나 서운했던가. 그러니까 여행 갈때는 미리 공부를 엄청나게 하여 보고 싶은 것을 꼭 머릿속에 기억해 두어야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진리이니까!

 

이르쿠츠크로 귀환 중 점심은 부랴트식으로 먹고 차내에서 러시아 최고의 인기 영화로 2008년 선정된 제독의 여인을 보았다. 여행의 노독이 안풀려서인지 반은 졸고 반은 보고 대충 짐작컨대 주인공인 꼴챠크 제독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볼셰비키 혁명군의 과격한 행태를 보고

조국을 위하는 길은 이게 아니다싶어 황제편인 백군의 수장으로 전쟁을 지휘하다 이곳 이르쿠츠크로 돌아와 혁명군에 잡혀 총살을 당한다. 21세기 초반

꼴챠크에 대한 인물의 재평가가 이루어져 영화가 만들어졌고 이곳 즈나맨스키 수도원앞에 동상을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 혁명군인 적군이든 황제편인

백군이든 수뇌 몇사람 말고는 결국 민초들이 뭔지도 잘 모르는 이념에 갈려 싸운 것에 지나지 않고 세월이 흐르면 역사의 평가는 전부 다 조국을 위해

싸웠을 뿐이었노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혁명이 성공한지 백년도 더 지났고하여 좌우 화해의 일환으로 이런 영화도 검열에 걸리지 않고 제작되었으리라..

실은 러시아는 외부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상당히 민주화된 사회가 아닌가싶다. 여러 종족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걸 보면 특히 그렇다. 푸틴이

가끔 힘깨나 쓰는 것처럼 근육 자랑을 하는데 실은 남이 무서워서 스스로 헛기침 하고 폼 잡는게 아닐까. ㅋㅋ.

 

앙가라 강변에서 바람을 쐬고 시베리아 최초의 석조건물 스파스카야 교회와 카톨릭 폴란드 교회등을 관광하고 인근 카페로 옮겨 맥주 커피등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기운을 내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데카브리스트 (데카브리는 러시아어로 12월)는 영어로 디셈버이스트 (december + ist. 12월의 행동가라는 뜻) 라는 뜻으로 1825년 12월 쌍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젊은 귀족출신 장교들이 러시아가 프랑스 영국등에 비해 낙후된 이유가 잘못된 제정러시아의 봉건정책에 있다고 보고 농노제 폐지등 당시로서는 천지개벽에 가까운 개혁적인 요구를 하며 일종의 반란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주모자 5명은 잡혀서 처형되고

나머지 백수십명은 시베리아로 20-30년 동안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중의 한 지도자인 발콘스키가 살았던 집을 그대로 보존시켜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을 만들었다. 데카브리스트들이 당시로서는 원시에 가까웠던 이곳 남

시베리아에 근대문명을 전파하고 이곳 이르쿠츠크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사용하던 옷 가구 생활용기 심지어 시베리아 최초의 실내정원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여러 이야기는 박대일 대표가 최근 지은 시베리안 나이트에 자세히 나와 있다. 물론 바이칼을 비롯한 시베리아의 관광 역사 문화등도 사진과 함께 재미있게 잘 설명되어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카잔스키 성당 - 일명 카잔의 성모성당으로 이곳에 있는 성모상 이콘에서 기도를 하면 기적이 많이 일어나 유명해졌다.) 

 

 

 

늦은 오후엔 아르바트 거리 130번가를 관광하였다. 이곳은 19세기 후반 대화재 당시 소실되었던 아름다운 나무집들을 재건축해서 지은 각종 편의시설과

카페등이 많아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서울의 홍대앞 거리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저녁에 좀 먹을 간식거리를 구하기 위해 마트에 들렀는데 왠걸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양식인 술이 안보인다. J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경축일인 러시아의 날이라 영업집을 제외한 마트등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전에는 러시아가 우리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을 기록했는데 요즘은 한국보다 떨어진다고 하여 왠일일까 궁금했는데 바로 이런 사정이 있었나보다. 우리나라도 이제 주 최대 52시간 근무등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다 보면 술 소비량도 즐고 건전한 문화생활을 즐길수 있게 되길 희망해 본다.

 

일곱째 날 (6.13.)

서둘러 이르쿠츠크 역으로 향하여 750분에 출발하는 환바이칼 관광열차를 탑승하였다.

이 열차는 남쪽인 슬류지안카까지 신설된 철로를 따라 갔다가 거기서부터는 바이칼 호수 서안을 따라 북으로 올라오는 옛 철로를 따라 운행하는 우리의 동해안 관광열차라 생각하면 되겠다. 앙가라강에 댐을 3개 건설하게되어 옛철로를 폐쇄하고 지금은 일부를 관광열차코스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다섯군데 역에서 정차하여 삼십분 - 한시간씩 관광을 하고 마지막 포르트바이칼역에서 철로는 끊긴다. 역이라고 해봐야 건물(역사)은 사라지고 없고 터널등 폐쇄된 옛 철로 및

주위 풍광을 보는 것이 바로 관광 자원이다. 두 번째 역인 키르키레이 역에서 바이칼 호수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 드디어 바이칼 호수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 물을 마시고도 싶었으나 하필 그 부근이 이끼가 끼고 그래서 먹기엔 엄두가 안난다. 613일 우리 나라 같으면 이른 해수욕을 할 시기인데도 이곳 바이칼 호수는 영상 4-5도 되는 것 같이 발이 시려서 1분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바이칼 호수는 여름에도 수온이 별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름엔 리스트비얀카 호안 모래밭 등지에서 그런 찬물에 수영을 하며 해수욕(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원래 러시아에서는 한 겨울에도 얼음을 깨고 몸을 담그는 것이 러시아 정교회 세례의 한 과정이라나? 새해 첫날 모스크바나 쌍트페테르부르크시 강 중앙에서 얼음을 깨고 첨벙 들어가는 것이 이곳 새해맞이 풍속인 것을 신문등에서 많이 보았다.

 

 

(키르키레이 역에서 내려 바이칼호수에 발을 담궜다. 바이칼호수 물을 마시면 1년이 젊어지고 발을 담그면 5년 수영을 하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하는데

나도 5년의 혜택을 본 셈이다. ㅎㅎ)

 

  (자르키 꽃)

 

제일 기억에 남고 풍광이 좋은 곳은 바로 빨라빈늬 역이다. 조그만 개울이 흘러나와 바이칼 호수로 들어가는 합류지점에 두어채 집이 있고 강변엔 조그만 거룻배도 보인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집으로 우르르 몰려가더니 미리 주문한 점심을 먹는다. 노란색이라고 해야하나 주황색이라고 해야하나 함초롬한 꽃이 보여 J에게 물어보니 자르키 꽃 (뜨거운 꽃이란 뜻)이라고 한다. 엄마가 이꽃을 정말 좋아한다고 하니 멀리 시골에 계시는 엄마 생각에 J는 그때 눈물을 훔쳤으리라. 보지는 못하였지만...

자르키 자르키 정말 기억하기가 어려워 우리 어르신들 주무실 때 머릿맡에 놓은 자릿기 물을 생각하니 겨우 외워진다. 자릿기 물은 우리 선조들이 고추 먹고 매워서(?) 마셨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는데 해석이 안되는 분은 나한테 이메일 보내시기 바란다. ㅋㅋ.

 

점심은 J가 조심스럽게 들고온 도시락을 먹었다. 어느 한식집에서 주문한 것 같은데 쌀도 경기 이천쌀 같이 맛있고 고기 김치등 반찬도 아주 좋았다. 양이

너무 많아 밥 한덩이는 다시 싸와서 저녁에 먹었다. 아 대한민국 아지매들 알뜰한 것으로는 세계 최고이다.

 

마지막 역인 포르트바이칼 역에서 앙가라강 건너편인 리스트비얀카로 가기위한 연락선을 기다리는 동안 조그맣게 꾸며놓은 철도박물관을 보고 시간이 남아 친구는 한국서 가져온 대금으로

아리랑 한곡조를 뽑았다. 러시아 인들이 엄지척하면서 Japanese? 하길래 No, Korean! 하고 답해줬으니 나름 한국국위를 선양한 셈이다.

 

저녁식사는 리스트비얀카 부근 시비르스카야 자임카라는 식당에서 보르쉬라고 하는 러시아 전통 수프, 삶은 감자, 샤실릭 (긴 철사 꼬치에 꿰어 구운 돼지고기) 그리고 Cowberry 케익등으로 구성된 전통음식을 먹었다. 수프도 정말 맛있었고 감자도 최고 그리고 샤실릭도 최고였다. 그 식당 최고급이라는 BAIKAL ICE VODKA에 맥주 몇병 시켜 곁들여 먹으니 청나라때 황제만이 먹었다는 만한전석이 부럽지 않았다. 물론 카자크 전통복장을 한 주인 아저씨와 인형같이 늘씬하고 예쁜 러시아 직원과 같이 사진 한컷도 덤으로 찍었다.

 

느긋한 저녁후 이르쿠츠크로 귀환하는데는 한시간여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남아 마트에 들러 보드카등 간단한 선물도 사고 호텔로 가서 푹 쉬었다.

 

여덟째 날 (6.14.)

아 벌써 마지막 날이구나. 일주일이 정말 일장춘몽같이 빠르게도 지나간다.

오늘은 다시 리스트비얀카 쪽으로 나가 딸찌 민속박물관 및 바이칼 호수 박물관 픽체르스키 전망대 리스트비얀카 노천시장등을 구경하는 날이다.

 

그동안 우리를 안내해줬던 J가 대학원에서 논문 발표를 해야 한다고 해서 한국 유학생 가이드

S가 대신 나왔다. 그는 스물 다섯 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십여년전 아버지가 러시아 관광을 다녀 오신후 러시아에 꽂혀 러시아 유학을 권장하여 여기 이르쿠츠크까지 와서 공부하고 있단다. 그의 아버지는 정말 남들과 다른 자상한 면이 있는 모양이다. 보통의 한국 아버지는 아들과 보통 사돈네 8촌 정도의 관계로 그닥그닥 지낸다는데.

 

딸찌 민속마을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자작나무 숲속에 이곳 원주민인 부랴트족 예벤키족 토플리족등의 주거 양식을 그대로 옮겨 재현해놓은 박물관이자 마을이다. 자작나무 숲속을 걸으며 한참을 가니 마을이 나온다. 모든 건물은 당연히 이곳에 지천으로 있는 통나무 및 판자로 지은 집이다. 전통복장을 한 원주민들이 만돌린등을 연주하고 있었고 특히 인상에 남는 멋진 건물은 조그마한 목조 교회이다. 호텔에서도 이 교회를 봤으니 그만큼 사진발 잘 받고 가치있는 건물이리라.

 

 

 (딸찌 민속마을내 목조교회)

 

 

(딸찌 마을 - 성곽을 이렇게 목책으로  지었다)

 

픽체르스키 전망대로 올라가는 리프트를 타고 가며 아래 산사면(겨울엔 스키 슬로프)을 보니 이제 노랑 하양 보라등으로 야생화가 엄청나게 피기 시작한다. 이 곳 높은 곳에서 저 건너 바이칼 호수를 조망하고 멋있는 호안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리스트비얀카 노천시장에 들러 구경도 하고 이곳의 특산물인 잣을 한봉지 샀다. 여기 잣은 크기는 별로 크지 않은데 그렇게도 고소하다. 우리 가평 잣과 뭐가 다른데 고소함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바이칼 호수에서 유람선도 타자는데 이날은 바람도 세고 풍랑이 조금 거칠어 포기 하였다. 얼마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 생각나기도 하고...

 

저녁에 다시 한식당인 KIMCHI로 갔더니 J도 아주 멋진 옷을 입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발표 어땠냐고 물어보니 최고등급인 5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와 같은 형제 민족인데 공부를 못하면 안되지하고 모두 박수로 격려해주었다.

공항에 J가 마지막까지 안내해주어 우리는 편안하게 공항으로 들어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기대고 모든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J는 대학원에서 한국말을 전공하기 전 취미로 한 1년 학원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그후 대학원에 와 작년에 나의 고향인 광주에 있는 조선대학교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이수하였다고 한다. 우리 말을 배운지 불과 삼사년밖에 안되었을터인데도 한국말을 아주 잘한다.

영어를 오십년을 배웠음에도 떠듬떠듬한 내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진다.

나는 박대표의 자문을 구해 그에게 부랴트어로 광주 바사간러시아어로 도취 광주’ (광주의 딸이란 뜻) 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몽골의 C 그리고 러시아의 J  S 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고 한국 오거든 꼭 연락하길 바래요. 다시 꼭 만나고 싶어요.

 

허접한 글 끝까지 읽어준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행운이 가득하시길 기원하며 또한 박대일대표의 BK TOUR가 날마다 번창하기를 빈다.

 

참고로 BK TOUR는 '노팁 노옵션 노쇼핑의 품격여행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모토로 하는 박대표의 여행철학이 그대로 녹아있는 회사이다. 

따라서 인원수가 열댓명이 안되더라도 가급적 여행자의 일정에 맞춰 주는 것을 지향한다.

 

()

 

 

수정 목록 삭제
댓글 목록
등록자 댓글내용 삭제
박종봉친구
자세한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꼭 가보고 싶네요. ㅎ. (2019-08-10)
BK투어
하루하루 생동감 넘치는 정성스런 장문의 후기글 너무 잘 보았습니다.
저도 같이 여행하고 온 기분이 들어요.^^
알혼섬에서의 일정, 테를지 국립공원에서의 일정이 조금 더 길었다면 하는 아쉬움.. 절로 느껴집니다.
좀더 여유로운 일정으로 다시 뵐 수 있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2019-06-25)
김안례
매 순간 기억을 새롭게 하며 또 다시 여행하는 느낌 굿이네요 (2019-06-24)
+ 한글명 + 비밀번호 글자가 잘 안보이시면 클릭하세요 옆의 글자를 입력해주세요.
상호명 : (주)비케이투어서비스   |   대표이사 : 박대일   |   사업자등록번호 : 579-86-00285   |   통신판매업신고 : 제2015-서울마포-1982호   |   관광사업등록증 : 제2017-000002호
주소 :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828호 (풍림VIP텔)   |   TEL 1661-3585   |   FAX 02-6280-1387
개인정보보호관리책임자 : 박대일  (bktour@daum.net)
당사는 일반여행업과 기획여행업 등 총 250,000,000원의 영업보증보험에 가입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