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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몽골 - 바이칼 여행후기 (2019.6.7.- 6.15.) - 3
작성자 : 박종봉 등록일 : 2019-06-20 조회수 : 1230

넷째 날 (6.10)

오늘은 울란바타르 시내 관광이다. 먼저 시내 남쪽 언덕위에 우뚝 세워진 자이승 승전탑을 보았다. 이 탑은 몽골이 소련군과 합세하여 일본과 싸워 이긴 2차대전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71년에 세웠다고 한다. 광장에는 소련제 탱크도 실물 그대로 전시되어있고 이들은 사회주의 초기의

몽골-소련간 우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지금의 몽골은 민주화가 잘된 모범적인 Liberal한 민주체제이다.

 

이 일대가 몽골의 강남 지역으로 인근 아파트 값도 엄청 비싸다고 한다.

그 언덕 아래 귀중한 땅 한 가운데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 이태준 선생 기념관이 있다.

대암 이태준 선생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기독교에 입문하고 선교사의 권유로 당시 연희 세브란스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졸업후 독립운동으로 일제의

체포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몽골로 망명하게 된다. 이때가 1914년이고 의술에서 낙후된 몽골에서 동의의국이라는 신식 병원을 세우고 선진 의료를 베풀어 그때의 몽골황제 복드한으로부터 1급 훈장인 에르덴 오치르”(금강석이란 뜻)를 받기도 하였다.

복드한은 라마교 승려로서 그때 몽골이 제정일치의 국가였기 때문에 황제에 추대 되었다고 한다. 세속적으로는 황제가 있으면 당연히 황후가 있어야해서

어렸을때 서로 동경하였던 분을 황후로 모셔 같이 살았다고 한다. 물론 거처 중간에 금줄(?)을 쳐서 서로 넘나들지는 않았겠지만... 


안내문을 읽다가 당시 몽골에 만연한 화류병(花柳病)을 치료했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병이지 궁금했는데 나중 화류계라는 말의 의미를 떠올리니 아하!하고 느끼게 된다. 이곳 신성한 곳에 어찌 성병이라는 말을 함부로 쓸수 있겠는가! 언어도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단어가 있게 마련이다.

선생은 독립운동가인 의열단의 김원봉, 김규식, 안창호 선생등과 비밀연락을 취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대었고 볼셰비키 코민테른으로부터 지원받은 독립운동자금용 금괴를 상해임시정부로 비밀리에 운송하기 위해 헝가리인 운전사등과 애쓰셔 성공했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군(적군)과 왕정을 지지하는 백군파로 나뉘어 내전 상태였고 백군파의 한 지파라고 생각되는 백위파의 두목 운게른이라는 남작이 휘하 병력 3천여명을 이끌고 몽골을 침입하여 살인 약탈 방화 성폭력등 아주 못된 짓을 하고 다녔다고 하는데 선생도 중국으로 피신할 수 있었음에도 남아 결국 잡혀서 38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운게른 휘하에 일본군 장교 20여명이 있었는데 결국 그놈들이 사주하여 선생을 그만 처형하고 만 것이다.

한몽 친선의 대표적 인물인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한몽 정부가 이곳에 기념공원을 세우게 되었고 연세 세브란스병원에서도 해마다 의료봉사를 하며 두나라간 우의를 증진시키고 있다.

나는 선생의 일대기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치 상해임시정부를 방문한 때와 마찬가지로 뜨겁고도 비장한 감회가 솟아올랐다.

 

몽골 독립운동의 영웅 수헤바타르 장군이 이 미치광이 운게른을 패퇴시키고 그를 사로잡아 총살형으로 처형했다고 하니 이게 인과응보인 셈이다.

이 분을 기념하기 위해 몽골 중앙 정부청사앞 광장을 수헤바타르 광장이라 이름지었다.

 

 

(겨울 궁전)

 

그후 몽골의 마지막 왕 복드한의 겨울 궁전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한가로이 고비(GOBI) 캐쉬미어 전문점 및 대형 몰에서 쇼핑도 하고 공항으로 향하였다.

울란바타르 - 이르쿠츠크를 운항하는 몽골항공 비행기는 정말 소형으로 마치 우리나라의 우등 고속버스같이 한열에 왼쪽으로 한좌석 오른쪽으로 두좌석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일행 넷 포함 도합 이십여명의 승객이 전부이다. 마치 국내선 운항같이 비행기도 한참 지연도착하여 다시 청소하고 기름 넣고하여 예상보다 한시간 반정도 늦게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였다.

 

입국수속을 하는데 컴퓨터가 느린가 여튼 일인당 십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한참 기다려 나오니 BK TOUR 표지를 들고 서있는 마치 한국사람과 똑같은 젊은 아가씨가 우릴 반겨준다.

카레이스키(러시아 말로 고려인이란 뜻)인가 되게 궁금하기는 한데 만나자마자 물어보는것도 실례인 것 같아 나중 저녁 먹으며 물어보니 부럇트인이라고 하고 이름은 J라고 하였다.

박대일 대표가 처음 이곳 바이칼에 온 이십여년전엔 다해서 한국인이 박대표 포함 딱 두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제법 교민도 있고 유학생도 좀 있다고 한다. 그래봐야 불과 이백여명이다던가...

 

KIMCHI라는 한국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데 나름 한국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 김치국도

한 대접 큰그릇으로 나오고... 러시아 맥주로 한잔씩하고 호텔에 도착하여 씻고나니 여독이

좀 풀리는가 금방 잠이 들었다.

 

다섯째 날 (6.11.)

우리가 묵은 호텔은 이르쿠츠크내 최고급인 코트야드 메리어트호텔인데 이 호텔을 잡기 위해선 1년전에 예약금을 줘야할 정도로 인기가 높단다. 몽골이나 러시아는 아직도 신용사회가 조금 덜 된것인지 미리 돈을 다 줘놔도 나중에 손님 모시고 가보면 방이 없다고 오리발 내밀곤 한단다. 물론 지금이야 아니지만 이십여년전 박대표가 바이칼 여행을 도입한 초창기때 이야기이다. 어떤 때는 알혼섬내의 숙소에 방을 잡아서 부부 여행객을 입실시키고 잠이 들었는데 새벽 한두시에 불쑥 모르는 사람이 가방들고 들어와서 깜짝놀라 가이드를 찾고 난리가 났는데 주인왈 우리 집에 온 손님인데 어떡하냐. 늦은 시간에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방에 침대가 세 개라 내줬다.” 그러더란다. 좋게 해석하면 유목민의 손님에 대한 대접의 전통이 뇌리속에 남아있는 것인가 생각해본다. (저 위 시베리아 북부에 사는 에스키모가 집도 내주고 마누라도 내줘서 대접한다는 그런 DNA가 공통으로 있는것인지. ㅎㅎ)

 

오늘은 알혼섬으로 향하는 날이다. 시간이 6시간 걸린다니 아침 8시부터 서둘러 차를 탄다.

우리를 태울 차는 이십여명 승차가 가능한 중형급 메르시데스 벤츠 최신형이다. 그런데 이 차종과 경쟁하는 차가 별로 없는가 여기 저기 관광용차는 죄다 메르시데스이다.

 

여정 도중에는 이곳 저곳에 부랴트식 성황당이 길가에 있었고 여기서 여행의 안전을 비는 기도를 하고 동전을 던지는 것이 관습이 된 듯 땅위를 보니 동전 수천개가 쌓여있다. 우리도 쉬면서 오늘 일정의 안녕을 빌었다.

 

이곳 바이칼 일대에는 부랴트족 토플리족 예벤키족등의 몽골계소수민족이 사는데 특히 부랴트 족은

우리 한국인과 아주 닮았다. 닮았다기 보다도 조금 우리식으로 꾸며 놓으면 말을 시키지 않는한 외관상으로는 전혀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가이드 J도 부랴트인이라는데 우리회사 전 여직원과 정말로 닮았다. 그의 고향은 이르쿠츠크에서 700KM 동쪽으로 떨어진 한가로운 시골인데 기차로 12시간이 걸린다고한다. 이곳 도시까지 나와서 혼자 고생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마치 우리민족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친밀감을 느낀다.

우리민족의 시원이 바이칼이란 것이 정설이고 또한 몽골인 부랴트족 한국인 아메리칸 인디언

중남미의 인디오들까지 전부 유아때 엉덩이 위 파란 몽골반점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니 우리 형제임이 아니고 누구랴.

나중 안 이야기지만 부랴트족 예벤키족도 다들 몽골계로서 그들의 주 정착지인 바이칼호 동쪽에 있는 부랴트 자치 공화국에도 몽골과 같은 티벳 라마교를 주로 믿고 있고 몽골인들이 여기에 있는 사찰에 순례를 온다고 한다.

  

점심은 여정 중간에 현지식으로 먹었는데 시골이라 이 식당 외에는 없었기 때문인지 변변치 않았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먹었다. 우리 뿐 아니라 이곳으로

여행을 많이오는 중국인들도 같이 이용하였다. 화장실이 아직 푸세식으로 나같이 나이 좀 먹은 사람은 옛날 시골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기도하여 일면 반갑기도 하였다.

혹시 교포중에 도전해본다면 이곳에서 한식+중식으로 식당을 내면 잘될 것도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년에 성수기 6-9월 넉달 벌어서 일년 먹을 생각을 해야한다. 허나 다르게 생각해서 넉달 벌어서 일년 먹고 살수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수 있겠는가. 비록 큰돈을 벌어 모을수는 없겠지만..

 

샤후르따 선착장에 도착하여 알혼섬행 도선을 탔다. 배 위에서 인근 지형을 보니 우리 선착장 언덕과 건너편 알혼섬의 언덕 바위가 칼로 자른 듯 똑같다.

즉 지각변동때 이곳에서 알혼섬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우리같은 지질학 문외한도 금방 알수 있었다.

배타는 시간은 불과 십여분이다. 내려서 우리는 러시아제 4WD SUV를 타고 한시간여 비포장 도로를 달려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묵을 곳 Villa Malina에 짐을 풀고 다시 차를 타고 저 위 북쪽으로 향한다. 즉 북쪽에서 남쪽으로 훑고 내려오는 관광여정이다. 처음 도착한 곳은 사랑의 언덕. 멀리서 보이는 지형이 하트를 닮아서 그리 불려진다고 한다, 두 개의 바위언덕이 있는데 아들을 낳고 싶은 사람은 왼쪽 언덕 딸을 낳고 싶은 사람은 오른쪽 언덕을 올라가라고 한다.

여기서 보는 바이칼호가 제일 광활하고 또 수심이 깊은 곳은 무려 1637미터라고 한다. 바이칼(현지말로 풍부한 바다라는 뜻)호는 남북 636km 동서 27-80km에 달하고 남한의 1/3 정도 면적에 담수량은 세계 민물의 20%에 달한다. 바이칼로 흘러드는 강은 무려 336개 그러나 흘러가는 곳은 유일하게 남서쪽방향의 앙가라강을 통해 이르쿠츠크를 경유하여 북극해로 스며든다. 세계 민물량의 20%라니 도대체 실감이 안가는데 비유하자면

이곳 꽤 넓고 유속이 빠른 앙가라강이 외부에서 유입되는 물이 전혀없다고 가정해서 6백년동안 흐를 수 있는 어머어마한 양이다.


알혼섬은 예전엔 연간 강수량이 이삼백 밀리미터에 불과했는데 요즘은 기후변화로 비가 꽤 온다고 한다. 오늘도 오후부터 쌀쌀해고 구름이 몰려오더니 이제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랑의 언덕 높은 바위에 올라 아 조상님들이여 당신과 나의 뿌리인 이곳에 제가 왔습니다. 얼마나 감개무량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 민족이 대대손손 영속되기를 기원합니다.“하고 기도를 하였다. 나의 또 하나의 버킷 리스트 한 줄이 오늘 사라진다.

 

 

(부르한 바위의 세르게 - 장승)

 

BK 박대표에 의하면 이십여년전엔 알혼섬에 차량이 겨우 4대 있었는데 이제 여름 성수기에는

무려 사백대가 운행된다고 하니 이 글을 읽으신 분중 아직 안가보신분은 서두르라고 감히 권한다. 언제 통행제한이 일어날지 아무로 모르니까. 신성한 섬인

알혼섬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보존하긴 위해선 뭔가 제한조치를 조만간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려오면서 뉴르간스크 (호수위에 사자머리형상의 사자섬과 악어바위) 빼씨얀카 (옛 양심수 수용소 부지 및 바이칼 어류의 한종인 오믈(Omul)을 가공했던 공장터) 사간후슌 (알혼섬 랜트마크인 삼형제바위) 하보이곶 (신들이 모여 회합을 가졌다는 신성한곳. 금줄이 쳐져있다) 등을 관광하였다.

이곳 6월 중순 진짜로 멋있는 관광꺼리는 바로 전나무 및 자작나무 숲속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진달래였다. 김소월 선생이 읊었던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이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었을까 정말로 놓칠수 없는 장관이었다. 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고 구경하다가 소리 좀 배운 친구에게서 자연스럽게 진도 아리랑 가락이 흘러나왔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리가 나았네 에해에해 아리랑 응으으응 아라리가 나았네. 노다 가세 노다나 가세 저 달이 떳다 지도록 노다나 가세 ~~ ”

나도 따라서 자연스럽게 덩실덩실 어깨춤이 나온다. 한참 걸어가면서 신나게 놀다보니 남녀 배낭족 외국인이 쉬면서 우리보고 박수치고 있는게 보인다.

반갑게 인사하고 물어보니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온 커플이다. 트래킹 정말 즐겁겠다하면서 손에 잡히는대로 국산 땅콩 캐러멜을 한움큼 집어 주었다. 강하게 잘 여행하고 돌아가라고 얘기해주면서...



(하보이곶 - 가운데 뽀쪽하게 보이는 곳이 신들이 회합을 가졌다는 신성한 곳이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중 반갑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 다들 무언가 나누려하고 건강을 빌고 좋은 추억

만들라고 덕담을 한다,

자기의 최대 고민거리도 평소 주변의 가까운 사람한테는 전혀 얘기 못하고 있다가 열차 3등칸에서 만난 전혀 모른 사람한테는 슬슬 실타래 풀리듯 자기

고민거리를 스스럼없이 얘기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걸 심리학적 용어로 무어라 한다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호텔로 귀환하여 잠시 쉬다가 시베리아 전통 사우나인 바냐를 체험하러 나섰다. 우리가 간곳은 최근에 지은 듯 깨끗하고 전부 자작나무인가로 벽 바닥 등이 치장되어 있다. 사우나는 큰돌들을 장작불로 때서 그 열로 덥혀 칠팔십도의 고열을 낸다. 이곳 사람들은 몇시간씩 안팍을 드나들면서 즐긴다는데 우리는

사우나 체질이 아니어서 그런지 한시간여 만에 나왔다.

특이한 것은 벽 위쪽에 큰 물통을 달아두고 찬물을 담아두어 사우나 방에서 나온후 끈을 잡아당기면 찬물이 온몸을 뒤집어쓸수 있게 만든 것이다. 우리도 물론 한번 땡겨보았다. 찬물에 놀라 도망쳤지만.

호텔로 돌아와 개운한 기분에 고국에서 온 마지막 쏘맥을 즐긴 후 잠자리에 들었다.

 

아 알혼섬이여 ... 우리의 고향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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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례
겨울 궁전 사진도 올려 주셔요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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